새로운 GICO
행복한 GICO
공정한 GICO
닫기
경기도 션샤인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행복한 GICO
행복한 GICO 경기도 션샤인
Print Link

여성 독립운동가
소개

영화 <암살>의 흥행 이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부분 유관순 열사 말고는 다른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훈장과 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 4,329명인데, 이 가운데 여성은 전체의 1.9%인 272명에 불과하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강일서 |
자료 참고 보훈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달의 독립운동가


윤희순 선생

춘천시립도서관 윤희순 선생 동산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 윤희순 선생
“글은 힘이 없습니다. 저는 총포로 할 것입니다.” 이것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고애신의 대사다. 조선 시대의 여성과는 다른 당찬 모습의 고애신, 드라마 속의 그녀처럼 우리나라에도 당당했던 여성 의병 지도자가 있었으니 바로 윤희순 선생이다.

그녀는 1860년 경기도 구리에서 윤익상과 평해 황씨 사이에서 큰 딸로 태어났다. 윤희순이 16살 때 시집 온 춘천 유씨 집안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깊었다.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시아버지 유홍석은 의병대를 만들었고, 윤희순은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 또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 8편의 의병가를 만들어 많은 여성과 청년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워줬으며, 4편의 경고문을 지어 의병과 싸우던 관군, 의병을 밀고했던 밀고자들, 일본군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켰다. 보다 못한 윤희순은 마을 여성들을 모아 여성 의병대를 만들었다. 마을 여성들을 모아놓고 “비록 여자라 해도 나라를 구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며 의병을 함께 도울 것을 요구했다. 이름 하여 안사람 의병대다. 그녀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군사 훈련을 했고, 탄약제조소를 직접 운영하며 의병들에게 탄약을 공급했다.

윤희순 선생이 지은 의병 가사


이후 가족과 함께 중국 만주로 간 윤희순은 민족 학교 노학당을 세우고, 중국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1913년 시아버지 유홍석이 죽고, 2년 뒤에 남편 유제원마저 세상을 떠났지만, 윤희순은 두 아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꿋꿋이 이어 나갔다. 그리고 고문을 받다 죽은 아들을 먼저 보낸 뒤 <해주윤씨 일생록>을 작성했다. 여기에 윤희순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매사를 시대에 따라 옳은 도리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가기 바란다.”

선생도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아들 유돈상이 숨진지 11일 만인 1935년 8월 1일이었다. 윤희순 선생은 초기 을미의병부터 후기 정미의병 때까지 직간접적으로 의병운동에 참여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 지도자였다.

나라를 위해 남편과 자신을 바친 박자혜 선생
1919년 3월 1일, 조선총독부 병원. 3·1운동에 참가했던 조선인들이 일본 경찰의 총과 칼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 온다. 만세운동은 3개월 이상 전개됐고. 3월 1일부터 서울에 있는 각 병원에는 부상자들이 줄을 이었다. 총독부의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인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큰 충격에 빠진 간호사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이 박자혜다. 당시 선생을 비롯한 한국인 간호원들은 18명이었으며 한국인 남자 의사로는 내과에 김용채, 산부인과 김달환, 외과 신창엽, 소아과 권희목, 피부과 김형익 등이 있었다. 그리고 연구과에는 김영오가 있었다. 이들은 환자들과 나라 잃은 슬픔을 함께 느꼈다. 그전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던 박자혜는 이날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박자혜는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일하는 조선인 간호사들과 함께 간호사의 독립운동단체인 간우회를 만든다. 그리고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쇄물을 만들어 뿌리고, 만세 운동을 하며, 조선인 의사들과 힘을 합해 일본인들은 진료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더 이상 일본인들을 위해 병원에서 근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병원을 그만두고, 만주에 있는 지인을 찾아 봉천행열차를 탄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 단재 신채호 선생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신채호 선생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그는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의 언론인이었고,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사> 등의 역사책을 쓴 사학자였으며, 안창호와 함께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를 만든 인물이다. 박자혜는 첫째 아이와 본국으로 돌아와 어려운 생계와 양육 문제를 홀로 해결하면서 신채호 선생의 독립활동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신채호가 감옥에 갇혔을 때 계속 역사책을 쓸 수 있도록 필요한 자료를 보내 주었고, 두 아들을 누구의 도움 하나 받지 않고 키웠다. 7년 동안 신채호의 옥바라지를 하다 결국 신채호의 유골을 들고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박자혜 선생. 그녀는 독립을 위해 남편을 바치고, 남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성이었다.

박자혜 선생

남편 신채호 선생

당시 박자혜 선생의
근황을 소개하는 신문기사.
(<동아일보> 1928년 12월 12일자)


독립을 위해 싸운 불굴의 여성 독립운동가들
이외에도 영화 <암살>의 실제 인물인 남자현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을 목격하고 무장항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남자현은 “나는 죽어도 아무런 여한이 없는 나이가 되었다.”며 암살을 결심한다. 남자현의 나이 61세. 그녀는 권총과 폭탄을 몸에 숨기고 노부요시에게 가던 중 경찰에게 붙잡힌다. 경찰에게 붙잡혔을 당시 남자현은 의병 활동을 하다 전사한 남편의 피 묻은 옷을 껴입고 있었다고 한다. 남자현은 일본영사관 감옥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정신을 잃자 감옥에서 풀려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눈을 감았다. 남자현 선생은 우리나라의 독립투쟁사에서 30년 동안 의열 투쟁을 벌인 여성이다.

또 임신 7개월의 몸으로 평남도청과 평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여성으로서는 처음 사형선고를 받았던 안경신 선생. 윤봉길의사의 도시락폭탄 암살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던 이화림 선생. 3·1운동에서 함께 뜻을 모았던 여성들과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만든 김마리아 선생.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당당히 죽으라.”고 하며, 새하얀 수의를 손수 지어 보냈던 바로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선생 등 이외에도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여성들이 정말 많다.

주로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고,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해서 기록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함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여성 독립운동가분들의 용기 있는 삶을 되돌아본다.

남자현 선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마리아 여사 회갑 기념사진


윤희순

1860년 경기도 구리 출생

1907년 여성의병 조직, 부녀자 군자금 모금 활동

1912년 동창학교 분교인 노학당 설립

1915년 조선독립단, 조선독립단학교 설립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박자혜

1895년 경기도 출생

1919년 ‘간우회’ 조직

1920년 신채호 선생과 결혼

1923년 의열단활동 독립운동 지원

1936년 남편 신채호 사망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공감

0

이번호 전체 기사

구독신청닫기

경기도시공사 웹진 구독을 희망하는 모든 분께
웹진을 보다 편리하게 보실 수 있도록 SNS를 통해 발송해드립니다.
정기구독 신청이나 이메일 변경, 연락처 변경 또는 구독 중지 등을 요청하실 분은 경기도시공사 홈페이지나 문의를 통해 알려주세요.

홈페이지 www.gico.or.kr   문의 1588-0466
성함
핸드폰번호(연락처)
이메일
웹진 수신 여부 SMS 이메일
개인정보 동의 여부
경기도시공사 웹진은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본인의 동의를 얻어 서비스 제공을 위한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합니다.

1. 개인정보 수집 이용 목적
- 웹진 이벤트 응모자 추첨
- 웹진 뉴스레터 발송


2.수집하려는 개인정보 항목 및 보유기간
경기도시공사는 웹진 서비스를 위한 필수정보를 아래와 같이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용자의 개인정보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의 처리목적이 달성되면 지체 없이 파기합니다.
- 수집항목 : 이름, 핸드폰번호(연락처), 이메일
- 보유기간 : 정보제공의 목적 달성 시 까지(구독 해지 시 즉시 삭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대해서 거부할 수 있으며, 거부시에는 웹진 이벤트 응모 및 뉴스레터 이용이 불가합니다.

보내주신 개인정보는 경기도시공사 본 과업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구독해지닫기

해지 신청을 하시면 뉴스레터가 더 이상 발송되지 않습니다.
성함
이메일
연락처
※ 향후 경기도시공사에서 발송하는 뉴스레터 메일, 문자 발송 등 수신을 원하지 않으시면, 이메일, 연락처수신 동의를 해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