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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유산에 담긴
고대로마의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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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건축물의 도시,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는 서양건축 역사에서 가장 많은 양의 건축유산을 남겼으며, 그 건축양식은 현대사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건축기술을 보유한 로마의 건축유산들을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서양문명을 꽃피워낸 로마의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백미희 | 자료출처 네이버 블로그 및 포스트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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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건축물의 도시, 로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로마는 서양건축 역사에서 가장 많은 양의 건축유산을 남겼으며, 그 건축양식은 현대사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건축기술을 보유한 로마의 건축유산들을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서양문명을 꽃피워낸 로마의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백미희 | 자료출처 네이버 블로그 및 포스트 활용



문명의 깊이를 보여 주는 물적인 증거는 단연 건축물이다. 로마는 서양건축 역사에서 가장 많은 양의 건축 유산을 남겼다.

석조건물로 대표되는 로마의 건축유산
오늘날 서양문명의 기본 틀은 로마다. 고대 로마는 기원전 8세기경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지중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고대 문명으로 고대 그리스, 오리엔트, 셈족, 서유럽 켈트, 게르만 등 문화의 용광로였다. 고대 로마의 문화, 법, 군사 체제는 현대 사회의 기틀이 됐다. 유럽의 범위도 로마법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까지다. 로마법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지역은 유럽의 범주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로마문명의 특징 중 하나는 석조건물이다. 목조는 쉽게 불에 타 없어져 버리지만 석조건물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도 남아 있다. 문명의 깊이를 보여 주는 물적인 증거는 단연 건축물이다. 로마는 서양건축 역사에서 가장 많은 양의 건축 유산을 남겼다. 로마의 건축물은 돌을 위주로 사용했기에 로마문명의 총화인 여러 건물들을 후대의 우리들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에 실용주의를 더하다
로마 건축의 뿌리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그리스 건축의 영향이다.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일찍부터 그리스 건축과 접했으며 그리스가 패망한 기원전 146년 이후에는 그리스의 조각물이 직접 로마로 반입되어 도로나 건물 내외의 장식물로 쓰였다. 또한 기술자도 데려옴으로써 그리스 건축의 형식이 직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로마에 정복당한 것은 그리스였으나 로마에 문화를 전파해준 것 또한 그리스였다. 지금도 콜로세움의 원형경기장, 바실리카(공회당), 콘스탄티누스 기념문 등 그리스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은 많은 건축물들은 다양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로마가 그리스를 무조건적으로 모방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가 형태 위주의 조각적인 건축을 추구했다면 로마는 공간 위주의 대규모 건축물을 추구했다. 또한 그리스와는 다르게 실용적인 건축을 추구했다.

다른 하나는 로마만의 건축전통으로, 구조기술을 중심으로 한 실용주의다. 과거 로마의 건축물은 디테일이나 장식도 훌륭하지만 구조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토목 공학 역시 다른 문명에 비해 크게 발달했다. 로마의 구조 실용주의는 발달한 도시문명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거대한 제국이었던 로마는 각 도시를 통제하기 위해 도시들을 표준화하고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실용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후 구조 실용주의는 서양 문화의 합리주의, 실용주의의 밑바탕이 되어 서양문화 전반의 중요한 전통으로 남게 되었다.

로마의 건축물은 신전 위주인 그리스 건축물과 달리 실용성을 추구하여, 시민들이 직접 사용하는 공공건물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도 로마에는 시민들이 거주했던 집은 물론 경기장과 신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이 남아 있어 고대 로마 제국의 사회 문화와 생활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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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르교(Pont du Gard). 고대 로마의 수도교(水道橋)로, 물을 운반하기 위하여 다리 형식을 빌려 만든 교량이다.
아치에서 볼트, 돔으로 진화한 로마의 건축양식
로마 구조 실용주의의 특징은 아치(arch)와 이를 활용한 다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아치는 벽돌 등을 곡성 모양으로 쌓아올린 구조로, 구조적 우수성이나 형태적 가변성이 뛰어나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4세기경부터 아치를 이용하여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아치 구조가 가장 빛나는 구조물이 바로 다리다.

이 중 물을 운반하기 위하여 다리 형식을 빌려 만든 수도교(水道橋) 중 하나인 ‘가르교’는 고대 로마인의 장인 정신과 실용 과학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최고의 걸작이다. 아치가 실용적인 까닭은 다른 재료가 필요 없이 자재만 가지고 건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교도 접착용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돌만 가지고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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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콜로세움(Colosseum). 검투사들의 대결과 호화로운 구경거리가 펼쳐지던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볼트 구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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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판테온(Pantheon). 돔 구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다신교였던 로마의 모든 신들에게 바치는 신전이다.
보통의 아치는 2차원의 형태지만 이를 늘어트려 3차원 공간으로 만들면 볼트(vault)가 된다. 아치의 장점이 3차원으로 확장된 구조로, 볼트는 로마 발전과 제국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아치가 다리와 수로에 쓰였다면 볼트는 지하시설과 같은 각종 저장시설 건축에 쓰였기 때문이다.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콜로세움’ 역시 볼트 구조의 산물로, 볼트 구조를 최고로 발전시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콜로세움은 그 높이와 규모가 상식을 뛰어 넘는다.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에 원형으로 돌계단을 빙 둘러쌓았다.

아치가 볼트를 거쳐 발전한 형태는 돔(dome)이다. 볼트가 아치를 3차원으로 구현한 것이라면 돔은 아치를 360도 회전시킨 형태를 뜻한다. 돔은 아치보다 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로마의 신전인 ‘판테온’이 바로 이 돔 형태로, 현존하는 로마 건축물 중에 가장 완벽한 돔 건축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판테온의 돔은 그 밑에 설치된 아치구조가 무게를 분산시켜 돔을 받치고 있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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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광장으로, 신전, 바실리카(공회당), 기념비 등의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의 도시와 정치
로마의 도시구조의 중심은 ‘포럼’으로 정치, 산업, 사교, 교통 등의 기능이 집약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로마의 사람들은 포럼에 모여 대화를 하고 토론을 나눴다. 시민들의 생활, 시정, 토론, 정치적 행위 등이 이루어지는 포럼은 로마공화제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공공의 문제에 대해 공개 토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포럼의 기원 또한 로마의 포럼에 따온 것이다.

포럼은 대게 두개의 길이 교차되는 곳에 위치하고 주위에 기둥이 늘어서 있는 형태다. 포럼 주위에는 신전과 바실리카 등을 배치하고, 제정시대에는 황제 기념광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가장 오래되고 대표적인 포럼은 ‘포로 로마노’로 포럼 5개소, 신전 14개동, 바실리카(공회당) 4개통, 개선문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복합 포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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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 로마 시대 황제의 궁전과 귀족들의 거주지가 있던 곳이다.
로마 시내의 정치 발원지는 7개의 언덕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 일대이다. 이 언덕 7군데에 로마의 귀족들이 살았다. 언덕들은 해발 100m 정도로 매우 작으면서도 비교적 낮다.

로마 초창기부터 귀족들은 이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언덕 아래쪽은 습기가 차고 하수구 냄새도 나고 모기를 비롯한 각종 해충들이 많았다. 언덕 위로 올라갈수록 시원하고 냄새도 덜 나고 모기도 적어 쾌적한 공간이 되었다. 문제는 상하수도 시설이다.

현대적인 개념의 상하수도 시스템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있었다. 고지대의 깨끗한 수원지로부터 물을 끌어오기 위해 로마인들은 수로를 만들었고, 그 수로를 이용해 도시의 여러 곳에 생활용수를 공급했다. 수로는 물론 석조와 벽돌로 이루어졌다. 이 상하수도 시스템 덕분에 팔라티노 언덕 위에 집을 지을 수 있었으며, 로마시대에는 공중목욕문화가 꽃을 피우기도 했다. 로마제국이 번성하면서 목욕탕은 황제들의 능력을 과시하는 장소가 됐고, 황제들은 소박한 목욕탕과 구별해 ‘테르마이'라고 부른 호화 목욕탕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카라칼라 황제가 216년 만든 ‘카라칼라욕장’은 축구장 4개를 합한 정도의 규모로 한번에 2,000명까지 입장할 수 있었다. 로마시대의 목욕탕은 도서관과 강연장, 집회실, 체육관까지 갖춘 종합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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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카라칼라욕장(Terme di Caracalla). 고대 로마의 황제 카라칼라가 건조한 목욕탕으로 온탕, 냉장 외에 각종 집회장, 오락실, 도서관 등을 갖추고 있었으나 전쟁 중 파괴되어 현재는 일부만이 남아 있다.
고도로 발달한 건축기술과 도시문화, 위생적인 상하수도시스템을 갖춘 로마는 결국 거대한 도시국가로 번성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토대 위에 실용적인 문명을 만들어낸 로마. 이 고대도시가 남긴 수많은 건축유산에는 오늘의 서양문명을 꽃피워낸 로마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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