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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된 섬,
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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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갈 수 있는 바다
육지가 된 섬, 오이도

두 다리로 보행하는 인간은 바다보다 땅이 편하다. 그래서 때로는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기도 한다. 바다였던 자리가 발을 딛고 서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렇게 메워진 땅에 마을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산다.

자료 발췌 LX 땅과사람들 Vol.168 요약 편집실 |사진 시흥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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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갈 수 있는 바다
육지가 된 섬, 오이도

두 다리로 보행하는 인간은 바다보다 땅이 편하다. 그래서 때로는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기도 한다. 바다였던 자리가 발을 딛고 서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렇게 메워진 땅에 마을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산다.

자료 발췌 LX 땅과사람들 Vol.168 요약 편집실 |사진 시흥시 외


ⓒ 촬영 심규철 작가 제공 시흥시


  • (상단)1. 오이도를 상징하는 빨간 등대는 2005년 ‘어촌체험 관광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졌다.
    (하단)2. 오이도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함상전망대는 해안 경찰 경비함으로 활약하던 262함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운 좋게
서해의 낙조와 만날 수도 있다.
일부 바다를 메워 땅이 되어 지역을 잇고,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된 섬,
앞으로도 오이도는 서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수도권 인근의 지리적 이점을 품고,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는 친근하고
가까운 바다로 사랑받을 것이다.


3. 밤이면 화려한 조명으로 오이도 해안을 밝히는 ‘생명의 나무’ 조형물이다.

ⓒ 촬영 심규철 작가 제공 시흥시

시화지구 개발 사업으로 탄생한 육지
1970년대 후반, 중동발 경제 부흥이 주춤하자 쓸모가 없어진 값비싼 건설 장비들이 속속 국내에 들어왔다. 갈 곳 없어진 기술력이 눈을 돌린데는 간척사업이었다. 서울, 인천과 가깝고 매립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지닌 반월만은 건설교통부와 농림수산부 모두 ‘적지’로 꼽는 간척사업 1순위 지구가 됐다. 당시에는 논과 공장이 들어설 땅과 물, 식량을 확보하는 것이 국민적 관심사였다. 그렇게 시화지구 개발이 시작됐다.

정부 관계 부처는 2년간 정밀 조사를 마친 뒤 시화지구 개발을 위한 개발 타당성 조사와 기본 계획을 확정했다. 역사적인 물막이 공사를 시작으로 1987년 국내 최대 규모인 길이 12.7km의 방조제 계획이 수립된다. 안산시 대부동 방아머리부터 시흥시 오이도에 이르는 이 방조제와 함께 여의도의 20배에 이르는 1,700만 평(액 56,198,847m²) 규모의 시화호 담수화 방침도 탄생했다. 담수 용량만 3억 2,000만 톤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시화방조제 건설은 요약하자면 난공사였지만, 시화지구는 갯벌을 없애고 4,038만 평(약 133,487,603m²)의 새로운 땅을 만든 간척사업이었다. 이 사업으로 오이도(烏耳島)는 이름 안에 섬(暹)을 품은 육지로 거듭났다. 그리고 수도권 전철 4호선과 수인선의 시•종착역인 오이도역이 인근에 개통되면서 지하철로 가는 바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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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많은 사람을 품던 섬
오이도(烏耳島)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까마귀와 비슷한 모양의 섬이다. 전체가 해발 72.9m²를 넘지 않는 낮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해 바다에 접한 오이도의 북동쪽은 시화 간척사업 전까지는 염전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한쪽 면에 제방을 쌓아 군수용 소금을 채취했다. 갯골이라 불리던 이곳에서 질 좋은 천일염이 많이 생산됐다.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든 삶의 터전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오이도에는 섬 전체에 서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석기시대 패총(貝塚)이 분포한다. 해안가나 강변에 모여 살던 선사시대인들이 버린 조개, 굴 등의 껍데기가 모여 무덤을 이뤘다. 거대한 패총의 존재는 그만큼 오이도가 많은 사람들을 품은 섬이었음을 의미한다.

풍부한 수산자원을 기반으로 한 오이도에는 안말을 중심으로 가운데살막, 신포동, 고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뒷살막 등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들은 1988~2000년 사이에 시화지구 개발 사업으로 사라졌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오이도 서쪽 해안을 매립해 조성한 오이도 포구 해양관광단지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옮겨 갔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이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많은 숙박업소와 음식점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 촬영 심규철 작가 제공 시흥시


수도권 해양 관광의 메카
오이도는 육지화 되기 이전에도 수도권의 유명한 바다 휴양지였다. 도시에서 바다 쪽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빨간 등대가 오이도의 상징처럼 자리한다. 오이도에는 바다에 인접한 오이도선착장, 배다리 선착장을 중심으로 오이도 종합어시장과 오이도포구 해양관광단지(이하 해양단지)가 있다. 해양단지에는 ‘ㄱ’자 형태로 조성된 횟집과 조개 칼국수집들이 줄을 지어 골목을 이루고 있어, 찾는 이들에게 사시사철 싱싱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시화방조제 오염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던 오이도에 활기가 생긴 건 지하철과 서해안고속도로의 개통 등 높아진 접근성이 한몫했다. 시화방조제 도로가 오이도를 거쳐 대부도로 연결되면서 더 많은 관광객이 이 지역을 찾고 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도 인기가 많다. 시화방조제 전망대로 연결되는 방조제 위의 도로는 막힘없이 직선으로 연결돼 있다. 바다 위를 달리는 듯 멋진 경관을 조망할 수 있고,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전용도로가 나란히 조성돼 있다. 늠내길도 오이도를 지난다. 시흥시의 올레길로 ‘뻗어 나가는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길이다. 갯골을 따라 소래포구까지 연결되는 이 길은 방문객이 많기로 이름났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운 좋게 서해의 낙조와 만날 수도 있다.

일부 바다를 메워 땅이 되어 지역을 잇고, 사람이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된 섬. 앞으로도 오이도는 서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수도권 인근의 지리적 이점을 품고,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는 친근하고 가까운 바다로 사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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