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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돌 속에 담긴
우리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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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 자리에 있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발에 차일 만큼 흔한 돌 역시 그렇다. ‘돌머리’라는 말처럼 우직하고 멍청한 것으로 인식되는 돌은 사실 우리 발밑의 땅, 나아가 우주를 구성했다. 그래서일까. 고대인들은 큰 돌에 별자리를 새겼고 돌로 무덤을 만들었으며, 가장 신성한 조각도 돌에 남겼다. 30년 이상 화강암 석조각에 매진해온 오채현 작가 역시 흔한 돌 위에 수수한 우리네 이야기를 담는다. 투박한 화강석에 익살과 해학을 녹여내는 오채현 작가를 만났다.

권유진 사진 주효상


화강석 조각가
오채현



세월이 흐륵수록
고상한 빛이 난다는 화강암은
은은한 부처님의 미소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돌이다.

석조각, 천년고도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오채현 작가는 신라의 천년고도이자 찬란한 불교 문화의 중심지, 경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불교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그에게 석조각 역시 일상의 일부였다. 경주 남산을 올라다니며 무수한 불상을 만나고, 학창시절엔 논둑을 걸으며 버려진 기왓장과 사금파리를 주워왔다. 유물 파편 속 문양과 불상의 피부에 새겨진 돌의 형태는 어린 그의 눈에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완벽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 토암산 근처에서 살았는데, 동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할 때도 늘 부처님 뒤에 숨었던 생각이 나요. 주말이면 할머니 손을 잡고 분황사도 가고 경주 이곳저곳 사찰을 돌아다녔어요. 지금 돌아보면 경주에서 태어났다는 게 운명이었던 것이지요.”

이후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가장 한국적인 돌, 화강석을 선택한다. 이 땅에서 나오는 석재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흔한 화강석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 이용한 소재다. 화강석은 결이 치밀해 섬세한 조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부드러운 선을 특징으로 잡아 표현하는 원만한 조각을 할 수 있다.

“화강석을 선택한 건 제 체질과도 맞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굉장히 단단한데도 무던하다고 해야 할까. 색깔이나 문양이 화려한 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질리기도 하고 칙칙하게 변하기도 하는데 화강석은 오히려 처음에는 아무 색깔도 없다가 세월이 흐를수록 고상한 빛이 납니다. 은은한 부처님의 미소를 담기에도 가장 적합한 돌이지요.”


오채현 작가는 화강암 자연석을 이용해 질박하면서도 푸근한 호랑이와 불상 등을 조각하는 한국의 대표 중견 석조각가다. 특히 그의 성상은 민중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아 현재 바티칸과 조계사 등에 안치되어 있으며 국내를 비롯해 뉴욕, 런던 등에서 30여 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개최했다.


석조각가



자연 화강석에 담긴 익살과 해학

오채현 작가는 불상뿐 아니라 익살스러운 호랑이, 한복 입은 성모상처럼 우리 민족의 수수하고도 솔직한 모습을 담아왔다. 특히 그가 주요 소재로 삼아온 호랑이는 민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으로 친근하고 해학적이게 다가온다. 바티칸 주재 한국대사관에 전시되기도 한 성모자상 속 마리아는 가슴을 드러내고 물동이를 인 채 어린 아들을 업고 있다. 구수하고 따뜻한 그의 작품은 화강석의 은은한 멋과 만나 신비하고 다정한 느낌을 준다.

“작품 속에 무얼 담아야겠다고 억지로 생각하진 않아요. 그저 어렸을 적 경주에서 보았던 수많은 불상의 이미지와 돌조각 형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불상을 만들 때도 정해져 있는 비율과 옷 주름 형태, 표정을 따지기보단 내가 생각하는 부처님의 얼굴, 이 치열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지친 이들에게 그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를 먼저 생각해요.”

작품을 제작할 때, 그는 밑그림을 그린 후 연삭기로 기초적인 작업을 한 뒤, 한참 동안 돌 속에 깃든 윤곽을 살핀다. 돌을 쪼고 깎아낼 때도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어떻게 하면 돌이 가진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하느냐 하는 점이다. 자연에서 가져온 화강석을 사용하고 있는 그에게 길게는 수백 년 동안 계곡과 산속을 뒹굴며 생긴 돌의 색감과 질감은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원석의 결이나 형태 등을 최대한 존중하며 돌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각의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그 느낌을 참고해 밑그림을 그리다 보면 돌의 개성을 오롯이 살려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지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경주에서 돌을 가져와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지금은 대부분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돌을 반출하는 게 많이 어려워졌어요.”


강인하고도 견고한,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닌 돌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사람에게 안식을 전한다.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어지길
경주에서의 어린 시절, 삶의 터전 가운데 돌이 있었기에 지금을 꿈꾸게 되었다는 그는 인공적인 재료로 만들어지는 현대 건축에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강인하고도 견고한,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닌 돌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사람에게 안식을 전하기 때문이다.

“돌과 나무는 우리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자연 속 재료예요. 다만 가공하지 않은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고 썩어버리지만, 돌은 아주 오랫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지요. 도시 속에서도 이런 웅장하고도 튼튼한 느낌을 주는 돌을 쉽게 보길 희망합니다. 돌 뿐 아니라 나무와 꽃이 주는 향기, 청량하고 맑은 물소리는 인공적으로 만들 순 있어도 자연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살리긴 힘들기 때문입니다.”

30년 넘게 화강석 속에 우리네 모습을 새겨온 그는 여전히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연삭기의 날카로운 굉음과 온몸이 떨리는 진동, 진폐증이 생길 만큼 풀풀 날리는 돌가루 때문에 석조각을 하려는 이들은 현저히 줄었지만, 돌 속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그의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난 투박한 손은 앞으로 만나게 될 그의 작품을 기대하게 해주었다.

“평생 해왔음에도 여전히 조각하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영감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언젠가 커다란 바위산에 작품을 남기는 것이 꿈이에요. 집채만 한 돌 속에 우리 시대의 솔직한 모습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그저 나태하지 않고 지금처럼 수행하며 조각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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