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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날의 함성이
이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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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경기도지부장 황의형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과 헌신을 다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지만, 여전히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왜곡된 역사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광복회 경기지부 황의형 지부장은 그의 아버지 독립운동가 황계주의 삶을 쫓아 광복회에 몸담고 있다. 그를 만나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권유진 사진 이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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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만들어진 조선인 비밀결사 단체, 여우회(麗友會)
황의형 지부장의 부친 황계주는 1913년 11월,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1939년 일본 야마구치 상업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사라지게 하려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반대하고 조선인 강제징용 등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기 위해 학교에서 조선인 학생을 대상으로 비밀결사 여우회(麗友會)를 조직했다.

같은 학교 생 유재우, 민병구, 성창완 등으로 구성된 여우회는 한국민족이 처해있는 환경을 비판하고, 억압과 착취의 이중고로부터 해방은 조국 독립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고 판단해 ① 여우회를 단순한 친목회에 초탈하여 민족주의 단체로 만들 것 ② 신입생에 대해 민족의식 계몽에 노력할 것 ③ 동지의 결집을 확대하고 강고히 할 것 ④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여 독립 쟁취를 확신시킬 것 ⑤ 중일전쟁으로 일본이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여 결국 패전할 것 ⑥ 해외 독립운동세력과 연계할 것 ⑦ 민족 지도자가 되기 위해 힘쓸 것 등을 투쟁 방침으로 정했다. 이 같은 투쟁 방향은 신입생 환영 또는 졸업생 송별회 등에서 알렸고, 여우회 회원은 조국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각오를 다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황계주는 1939년 7월 10일 체포돼 1940년 3월 12일 검사국으로 송국 된다. 귀국 후, 독립운동의 실천적 방법 등을 모색하다 일경에 발각돼 1944년 10월 22일 동대문경찰서에서 구금됐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다
황의형 지부장이 부친의 발자취를 찾기 시작한 것은 그가 은퇴를 앞둔 시점부터였다. 유복자였던 그는 부친의 사망 이후 태어나 한 번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가족들로부터 자상하고, 존경받는 분이라고 들었던 그였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공산주의자, 빨갱이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몽양 여운형 선생님의 발자취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운형 선생님은 국가를 위해서는 좌파와 우파가 연합해서 통일된 민족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좌, 우 합작 중도를 외치셨지요. 하지만 양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설 자리를 잃었고 결국 1947년 극우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여운형 선생님의 이념과 생각이 같아 그분의 일을 도왔습니다. 광복 직후, 최고조에 달한 이념의 대립으로 아버지와 여운형 선생 모두에게 공산주의자, 빨갱이란 꼬리표가 붙었고, 가족들 역시 아버님의 이념에 말을 아꼈습니다.”

어린 시절 내내 부모님을 원망하며 지냈다는 황의형 지부장은 집에 있던 아버지의 사진도 살펴보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후, 자식을 낳고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점점 희미 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년을 앞두고 아버지에 관한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더 늦기 전에 발자취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자식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을 2년 넘게 드나들며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거의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에서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어요. 그러다 일제강점기 당시 재판기록, 독립유공자 공훈록에서 아버지를 마주할 수 있었고, 국가에 독립유공자 공훈을 신청했습니다. 아버지를 가장 많이 원망한 자식이었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존경하고, 독립운동가 유족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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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려는 노력, 계속되길 희망하며
10년 넘게 광복회 안양시지회 지부장으로 있었던 그는 지난 7월 경기지부에서 지부장을 역임했다.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으로 구성된 광복회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고귀하고 숭고한 역사적 소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가정을 이루지 않거나 일제 고문으로 인해 후손이 없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을 발굴하고 훈포상을 서훈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친일 반민족행위자 알리기, 후손 역사 바로 알기 활동 등을 통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한 가족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한 사람들 후손들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국가 공동체 존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희생을 감수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보훈제도가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1919년 한반도 전역에 독립의 함성이 울린 지 100년이 지났다. 민주주의와 평화, 비폭력의 정신이 빛났던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역사를 바로 알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나치가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했던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은 반드시 그 역사가 반복 된다’고 쓰여 있습니다. 용서는 하되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민족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이어져 온 잘못된 역사를 반드시 바로잡게 되길 소망하고 이 같은 노력에 젊은이들이 함께해주시길 소망합니다.”


광복회(光復會)
광복회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 유족들로 구성한 단체로 전국적으로 15개 지부와 100여 개 지회에서 8,000여 명의 광복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후손 찾기,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홍보, 친일 반민족행위자 알리기, 후손 역사 바로 알기 행사 등을 통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훈포상을 서훈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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