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CO LIFE 경기건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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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아픔의 시간
다시 문화로 치유하다

수원 독립운동의 근거지들

우리가 기억하는 근대는 아픈 시기다. 일제강점기의 슬픔이 담겨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채 힘겨운 시간을 버티며 모든 걸 바라본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수원 곳곳에 남아 있다. 어떤 건축물들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할지 찬란했던 그 시대와 마주선다.

글. 강일서 자료 협조. 수원시, 도란도란 수원e야기 blog.naver.com/suwonloves

Ⓒ 지인건축사사무소

▲ 수원의 3.1만세운동이 펼쳐진 수원화성 화홍문

모두가 힘을 모아 외친 “대한 독립 만세”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이에 맞춰 일제에 강압통치를 받아야 했던 민중들은 조선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며, 손에 태극기를 들고 곳곳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3.1독립운동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수원과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은 오랜 기간 격렬하게 독립운동이 전개되며 3·1운동 3대 항쟁지로 역사에 기록을 남겼다. 수원에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여러 곳들이 있는데 그 함성의 기록을 따라가 본다.
Ⓒ 지인건축사사무소
Ⓒ 지인건축사사무소

▲ 1914년 수원 자혜의원이 자리했던
지금의 화성행궁 봉수당 모습

수원의 3.1만세운동은 서울과 동시에 3월 1일에 시작됐다. 그 함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곳이 바로 수원화성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다.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김세환, 김노적 등의 젊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교사 및 학생, 기독교도들의 주도로 수백 명이 운집했고, 수원 지역 3.1만세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어 3월 16일 서장대와 연무대에서 수백 명이 모여 다시 만세시위가 이어지며, 시가지 종로를 통과하면서 상인들이 합류하여 만세 함성은 더욱 커졌다.
이렇게 수원은 전 계층에 걸친 독립운동이 일었는데 화성행궁 내에 위치한 봉수당에서 기생들의 독립운동도 펼쳐졌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이곳에는 수원 자혜의원이 있었다. 일제가 민족의 얼이 깃든 화성행궁을 무너뜨리고, 거기에 식민지화를 위한 행정기구와 병원 등을 설치했는데 그 목적으로 1910년 화령전에 자혜의원을 만들었다. 1919년 3월 29일 바로 그 자혜의원 앞에서 기생들의 만세 소리가 무서운 기세로 터져 나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생을 옛날 천민 중 하나로 여기지만, 사실 그들은 엄연히 예藝에 능한 예술가로서, 민족의 일원이었음을 독립운동을 통해 보여줬다. 강압적인 기생 제도에 대한 항거이자 민족의 일원으로서 파렴치한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기 위해 그녀들은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단하고 태극기 제작 등 준비에 나섰다.
당시 자혜의원 앞에는 수원 경찰서가 있어 총칼로 무장한 일본 경찰과 수비대가 가득했는데, 의원으로 정기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던 30여 명의 기생은 거침없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선두에 섰던 23살의 기생 김향화는 일본 경찰에 붙잡혀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1919년 10월 27일 가출옥될 때까지 모진 옥고를 치렀다.

Ⓒ 지인건축사사무소 ▲ '꽃중의 꽃' 더욱 붉었던 기생 김향화

Ⓒ 지인건축사사무소 ▲ 수원의 대표 독립운동가 김세환(민족대표 48인 중)


선교 활동과 근대 교육을 통한 독립 의지

화성행궁 맞은편에 위치한 종로교회는 1899년 신앙의 공동체로 시작한 수원의 첫 개신교회다. 1901년 하반기에 보시동 116번지에 보시동교회(옛 수원종로교회의 교회명)가 세워졌고, 1907년에 수원 종로 사거리로 이전했으며, 현재는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건축 당시 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건물 외관에 큰 유리창을 내고 유리창은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으로 장식했으며, 종로교회는 선교 활동과 더불어 민족지도자들에 의한 3.1독립운동과 국채보상운동, 애국계몽운동을 이끌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 건축사진가 윤준환 ▲ 수원의 첫 개신교회 종로교회

근처 삼일학교(학교법인 삼일학원, 현 삼일공고.상고.삼일중학교)는 1903년 미국인 선교사 스웨어러W.swearer, 서원보(한국 이름)가 15명의 소년들을 모아 시작한 교회부설 학교다. 전체적으로 적벽돌을 사용했으며 지붕은 벽체 위에 목조 트러스를 올리고 널판을 깔아 함석판을 올린 구조다. 아담스기념관은 1999년 현관과 1층 내부에 강관 기둥을 보강했으며 2001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삼일중학교 내에 자리한 아담스기념관과 학생운동지 안내문

삼일학교를 지나 통닭골목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한국 최초의 포교당 각황사(현재 조계사), 강릉포교당과 함께 전국 3대 포교당으로 불리는 수원사水原寺에 도착한다. 수원사는 근대불교 도심포교의 상징이며, 1912년 용주사 수원포교당으로 건립된 이곳은 일제강점기 도심포교를 진행했다. 수원사는 도심포교 뿐만 아니라 근대문화 산실의 역할도 했는데 1929년 9월 한국 최초 여성화가인 나혜석 전시회를 열기도 했으며, 현재는 주민들의 휴식공간 역할도 겸하고 있다.

Ⓒ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근대불교 도심포교의 상징 수원사

Ⓒ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 최초 종묘와 종자, 농기구를
보급한 회사 ㈜부국원

끝으로 수원천 건너편인 남문의 인쇄 골목에 들어서면 수원교회 맞은편에 부국원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최초 종묘와 종자, 농기구를 보급한 회사였던 ㈜부국원은 수탈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해방 이후 검찰청, 공화당사, 수원법원ㆍ검찰 임시청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다가 2017년에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 받아 현재 부국원은 수원의 근현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 되고 있다. .
이렇게 수원화성과 근대 건축물들을 돌아보고 나면 일제의 만행에 가슴 한 편이 먹먹해져 온다. 낡은 근대 건축 유산들은 한 자리를 외롭게 지키며 100여 년 동안 수원 사람들의 삶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부서지고 지워진 근대사의 이야기들이 잘 보전되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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